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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People

드렁큰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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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타이거대한민국힙합 음악가이다.

드렁큰 타이거는 원래 LA 흑인 폭동 직후 1992년에 미국 웨스트 코스트 LA의 '랩의 뿌리' 힙합 축제에서 데뷔한 한국인 래퍼 타이거JK(서정권)에 의해 시작되었다. 드렁큰타이거를 대표하는 타이거 JK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힙합 방송을 비롯한 크고 작은 무대에서 랩실력을 뽐내며 이름이 알려졌다.

혹은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힙합계의 여러 동료들이 참여하는 타이거 클랜(Tiger Clan)이라는 공동체(collective)를 가리키기도 한다.

드렁큰타이거의 1995년 첫 번째 한국 공연에는 타이거JK를 주축으로 미국의 Mickie Eyez와 Sucram가 활약했고, 1999년 두 번째 귀국에는 모든 작품의 라임을 단독으로 쓰는 타이거JK를 주축으로 DJ 샤인이 참여했다. 드렁큰타이거의 음반은 1995년까지 합산하면 모두 아홉 장이다.

1999년 1집부터 5집 앨범까지 활동한 DJ 샤인은 탈퇴했고, 현재의 타이거 클랜은 필리핀계 Roscoe Umali를 비롯해, Micki Eyez, Xrae 그리고 한국인 James Jhig, Mongo Fresh, 프로듀서인 Jason Park, kevin gunheehan 등이다.

한국의 정통 힙합 전파에 공헌해온 드렁큰타이거의 힙합운동은 더 크게 무브먼트(Movement) 크루로 범위를 넓혀왔고, 2004년으로 12년째 한국힙합과 연결된 해외의 코리안 커넥션, 아시안 커넥션 캄포 피니크, 그리고 세계 힙합계를 개척해왔다. 드렁큰타이거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힙합작품을 발표했고, 각종 수상등 업적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 6월 동료가수 윤미래와 결혼하였다.

[편집] 멤버

본명 : 서정권 / 출생 : 1974년 6월 11일 / 소속사 : 정글 엔터테인먼트 / 학력 : UCLA
가족 : 아버지 음악평론가 서병후, 어머니 김성애(전 와일드캐츠 멤버), 아내 윤미래, 아들 서조단

[편집] 변화과정

1999년 드렁큰타이거는 타이거JK와 DJ 샤인으로 이루어진 힙합 듀오였다.

그러다가 2000년 2집부터 DJ James JHIG이 DJ로 드렁큰타이거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한국에 오기 전부터 JK와 같이 활동하려 했던 외국의 Roscoe UmaliMicky Eyes도 2집 때부터 부각되었다. 그들은 4집 앨범까지 참여했으나, 각자의 사정으로 그 이후의 앨범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JK와 샤인 둘만 남아 5집을 발매하게 되는데, 그 5집마저 샤인은 개인사정으로 "백만 인의 콘서트" 단 한 곡만 참여했고 거의 JK 혼자 작업을 했으며 JK의 솔로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당시 드렁큰타이거의 불화설이 돌았으나, 샤인은 직접 공식 홈페이지에 'JK와의 우정은 변함이 없다'라는 식으로 해명을 하였다. 그러나 2005년 6집이 나오기 전에 샤인이 돌연 드렁큰타이거를 탈퇴하였고, 6집부터는 타이거JK의 솔로체제가 되었다.

[편집] 일대기

[편집] 역사

1992년 흑인폭동 당시 흑인 랩퍼 아이스 큐브는 Black Korea란 곡을 발표했다.

흑인을 상대로 장사하면서 정작 흑인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는 한국인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였다. 흑인들을 비롯한 많은 MC,DJ들이 참가하는 힙합 페스티발 공연장에 한국인 랩퍼가 소개되자 관중석에선 야유가 터져 나왔다.

고2의 어린 소년 타이거JK, 그는 당당하게 흑인들과 맞서 한국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내용의 'Call me Tiger'라는 노래를 불러 즉흥랩 상을 받았다. 그 소년은 거기서 다른 한국 사람 DJ 샤인을 만났다. DJ 샤인도 뉴욕 각종 클럽에서 DJ로서의 실력을 인정 받아 곳곳에서 초청받아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서로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만났다가 둘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금방 친해져서 힙합그룹을 만들었다.

[편집] 업타운과의 마약사건

2000년 5월 드렁큰타이거의 멤버 타이거JK는 히로뽕을 흡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JK가 구속된 것은 이미 구속기소돼 있던 업타운의 멤버가 `JK와 함께 수 차례 히로뽕을 흡입했다`고 증언한 것 때문으로 알려졌다. 드렁큰타이거 JK의 마약사건은 국내 힙합인들은 물론 미국 힙합 사회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킨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JK는 `히로뽕을 흡입했다고 하는 때에 나는 한국에 없었다`며 혐의 사실을 부인했고, 소변·모발 검사에서도 모두 음성판정이 나왔다. 사정이 이런데도 JK는 2000년 5월4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36일간 복역한 후 6월 8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구속 당시 팬들은 JK의 부친이며 공륜 음반심의위원을 지낸 팝칼럼니스트 서병후씨와 함께 구명운동 및 항의집회를 가졌다. 또, 세계적 인터넷 방송국 `Heavy.com`은 라는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으며, 외국 힙합잡지들은 이와 관련한 특집기사를 게재했고, 우 탱 클랜 등 유명 힙합가수들이 `Free JK`라는 싱글을 발표해 국제적인 파문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당시 드렁큰타이거는 업타운이 거짓 증언하였다고 자백한 녹취 테이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공개·앨범에 실으려고 하였으나 JK의 무죄가 입증되자 결국 공개하지 않았고 그때 JK는 "미국은 죄가 입증되기 전까지 무죄이지만 한국은 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죄이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편집] DJ 샤인의 탈퇴

1999년 타이거JK와 함께 드렁큰타이거를 창단한 DJ 샤인은 드렁큰타이거로 활동하기 전후에도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그는 타이거JK와 함께 드렁큰타이거로 2005년 5집까지 활동하다가 갑작스레 탈퇴를 하고 드렁큰타이거를 나가게 된다. 그후 DJ 샤인의 탈퇴 사유에 대해 많은 뜬소문들이 올라왔고, 그 당시 언급된 탈퇴 사유로는 타이거JK와의 불화, 음악적인 회의, 그리고 평소에 사업에 관심이 많은터라 사업에 열중하기 위해 탈퇴를 하였다는 등의 말이 대표적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가 왜 드렁큰타이거를 나가게 되었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타이거JK와의 불화'가 유력하다. 그 후에 그는 2006년 영화 OST앨범에 참여, 2007년 허니패밀리의 앨범에 참여하는 등 간간히 모습을 보였으며 2009년 5월 현재 솔로앨범 "Right Round (Digital Single)" 을 발표하여.활동하고 있다.

[편집] Rakim과의 콜라보

2009년 6월, 드렁큰타이거의 8집 발매에 앞서 Rakim, Dilated peoplesRakka, J-Hiphop에 선두주자 Zeebera 등,

해외 유명 랩퍼의 참여소식이 대한민국 힙합계를 흔들어놓았다. 특히 God MC. Rakim의 참여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힙합 역사에 새겨질만큼 국내 힙합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또한 어떠한 댓가도 받지않고 흔쾌히 앨범에 참여해 주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로써 드렁큰 타이거는 한국 힙합의 발전에 다시 한번 기여하였다.


타이거JK와 콜레보를 한 Rakim이 타이거JK와 한국 힙합팬들에게 전해온 편지 :


"타이거JK는 힙합 음악과 그 운동에서, 나와 똑같은 좁은 길을 나란히 개척해가는 친구!"

"나는 언제나 의식 있는 눈으로, 세계를 내다보는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였습니다. 나는 그 동안 콜레보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콜레보를 할 때에는 나와 똑같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아티스트를 찾습니다. 타이거JK가 바로 그런 친구입니다. 우리는 지금 육체적으로는 서로 지구의 반대편 끝에 있지만, “힙합 - 그 음악과 그 운동”을 보는 방식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서로 꼭 같이 나란히 가고 있습니다."

"나는 뉴욕 아티스트이지만 글로벌한 안목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그리고 아시아에서의 상황을 잘 알고 있고, 언제나 엄청나게 큰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들이 내 메시지를 듣고 있다면, 나도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올바른 기회를 찾아 무언가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무언가 되돌려 줄 수 있을 때, 나도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던져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십시오."


Rakim의 영어 편지 원문 :

"I've always been an underground artist with a conscious outlook on the world. I haven't done a lot of collabs, but when I do, I'm looking for artists in the same lane. Tiger's that dude. We're on opposite sides of the planet physically but spiritually and in the way we see Hip-Hop - the music, the movement - we are right along side."

"I'm a NY artist but I got a global outlook. I know in Korea - in Asia as a whole - I've always gotten tremendous love. So if they're listening to me, I got to listen to what they're doin'. And when you find the right opportunity - when you can do something direct and give at least something back - you know I'm goin' in with all I got."


[편집] 디스코그래피

[편집] 정규 앨범

  • 1995년 - 타이거 JK 1집 《Call Me Tiger》 타이틀곡 - “Kid from Korea”
  • 1999년 2월 - 1집 《Year of The Tiger》 타이틀곡 - “난 널원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 2000년 4월 - 2집 《위대한탄생》 타이틀곡 - “위대한 탄생”
  • 2001년 3월 - 3집 《The Legend of...》 타이틀곡 -“Good Life”, “Is Ask Hizay?”
  • 2003년 2월 - 4집 《뿌리》 타이틀곡 - “남자기 때문에”, “엄지 손가락”
  • 2004년 8월 - 5집 《하나하면 너와 나》 타이틀곡 - “Liquor shots(술병에 숟가락)” , “편의점”
  • 2005년 8월 - 6집 《1945 해방》 타이틀곡 -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 “심의에 안 걸리는 사랑 노래..”
  • 2007년 9월 - 7집 《Sky Is the Limit》 타이틀곡 - “8:45 Heaven”, “내가 싫다”
  • 2009년 6월 - 8집 《Feel ghood musik》타이틀곡 - “Monster”,“True Romance”

[편집] 컴필레이션

  • 1999년 2월 - 《1999 대한민국》 참여곡 - “Hip-Hop Syndrome ” , “Mission Impossible ”
  • 2002년 5월 - 《2002 대한민국》 참여곡 - “Voodoo Boogie”

[편집] 비정규 앨범

  • 2006년 11월 - 디지털 싱글 《희망승일-행복의 조건》
  • 2008년 5월 - 디지털 싱글 《랩소디 Part 2》

[편집] 수상내역

  • 2008년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노래상
  • 2005년 제20회 골든디스크상 뮤직비디오 작품상
  • 2005년 Mnet-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우수작품상
  • 2003년 서울가요대상 힙합부문 특별상
  • 2001년 서울가요대상 힙합부문 특별상
  • 2001년 Mnet 2001 뮤직비디오 페스티발 힙합 최우수 작품상

[편집] 레이블

2006년 2월에 정글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였다. Jungle Entertainment는 신인 아티스트 발굴 및 음반기획 전문업체이며 대중의 가슴을 울리고 갈증을 해소하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