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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People

시골의사 박경철의 인생 상담 ①

① 농경시대, 기계의 시대를 지나 지금은 '사람의 시대'

 

안녕하세요…  한겨레 신문을 읽다가 웹진 나비의 창간 기사에서 시골의사 박경철의 인생상담 코너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바로 인터넷 접속, 고민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라는 글을 보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이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38살/여자/대졸/싱글/백수입니다. 저는 기업의 도서관 사서로, 10년 정도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능동적인 사서가 아니라 수동적인 사서의 역할에 한정되어 있었고, 달리 길이 보이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때 서른을 넘은 나이였기에, 장래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 한의대 진학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최선을 다해 수능을 공부했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하지만 밑바닥까지 잠재해있던 에너지까지 다 소모했기에 후회도,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미련도 없었습니다.

 

거의 1년 넘게 백수로 지낸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다시 취직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채용사이트에 올려 둔 이력서를 보고 헤드헌터의 연락을 받게 되었고, 한 회사의 자료실을 만드는데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2년 계약직이나 여러 조건들이 나쁘지 않았기에 입사하였고, 자료실을 만들고 나서 저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또 백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즈음, 저의 재취업에 도움을 주었던 그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취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터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헤드헌터는 백수인 저에게 같이 일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녀는 개인사업자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생소한 일이었지만, 도전하였고 처절하게 이용만 당하고 또다시 백수가 되었습니다. 1년 반 동안 그 헤드헌터와 일을 하면서, 인간에 대한 실망과 저 자신의 멍청함과 순진함에 아직까지도 스스로 자학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이 막장이 되니, 이제는 막장 인생들을 만나는구나, 라는 자괴감마저 생겼습니다.

 

현재, 저는 7개월째 백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헤드헌터를 그만둘 당시에는 직업상담사 자격증(*헤드헌터 사업자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격증)을 따서 내가 사무실을 내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개인사업체를 내는 것은 성공의 확률보다 실패의 확률이 더 클뿐더러, 내게는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진 경력이라고는 사서 경력이라 그 경력으로 취업을 하려고 보니, 나이가 너무 많고 모든 취업 대책은 청년실업에 맞춰져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도 알 수 있지만,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정말 치명적인 취업의 걸림돌입니다. 혹시나 나와 비슷한 사례가 있을까… 찾아봤지만, 저와 같은 사례는 없었습니다. 골드미스들은 나름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무덤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 구실 못한다는 것이 바로 돈을 벌지 못하는 것임을 너무 잘 배우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저를 도와줄 이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기에 혼자서 먹고 살 방법을 찾아보지만, 길이 안 보입니다. 직업상담사 자격증 시험 결과를 기다리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설령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딴다 한들 또 다른 길이 있을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제가 지금 다시 직업을 정한다면 평생 먹고 살 직업일 텐데…  도무지 길이 안 보입니다.  최저 임금이라도 받기 위해 여러 군데 지원해 보지만…  정규직은 아예 기회조차 없고,  비정규직에 지원해 보지만 연락이 없습니다.

답답하고 융통성 없고, 멍청한 인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님의 글을 보고 인간이 자존감을 가진 개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해 봅니다. 원시시대 인간이 자연과 협력하던 시절에는 인간은 생산의 전 과정에 개입했습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고, 길쌈을 하고 가축을 기르며 살던 시절에는 삶을 지배하는 것은 나의 의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대를 거치면서 인간은 과정의 일부에만 개입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를테면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가 조립하는 부품은 단지 완성품의 일부를 담당할 뿐 나는 어떤 성과물도 스스로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은 기계를 만들었고 자연과학은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그만큼 인간이 소외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존감을 느끼기란 어렵습니다. 끊임없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일해야 하기 때문에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나의 가치는 사실 기계부품보다 못한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아마 님이 사서직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일 것입니다. 부정적 의미로서의 ‘대중’을 거부한 것이죠. 사회과학이 아닌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대개 ‘대중’이라 불리는 단일기호로 표시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중’이란 말은 참 두려운 말입니다. ‘대중’은 표준화된 용어죠. 나도 너도, 우리도 아닌 ‘대중’은, 지배받거나 지도받지 않고서는 혼자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가혹한 존재를 가리킵니다. 과거에 비하면 지구상에 어마어마한 잉여자산들이 넘쳐나게 되었지만 어떤 조직, 기업 단위에 속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됩니다.

 

즉 대중은 시스템에 속해야만 살아남는 존재인 셈입니다. 그러니 고통스럽습니다. 당장 하루하루가 나 자신의 실존적 결단에 의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게 부여된 임무를 소화해야 하는 일원이니까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때로는 약간의 축적된 자산을 이용해서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물론 심한 경우에는 마약을 하거나 파멸적인 향락에 빠져들기도 하지요. 고통을 잊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피입니다. 그야말로 그 순간일 뿐, 돌아서면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대중이라는 자각은 그로부터의 소외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역설로 기능 합니다.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실존적인 삶을 택하기 위해 농장으로 내려가거나,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며 자신의 가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을 떨친 사람들의 몫입니다. 여전히 두려움을 가진 채 낙향하여 농사를 짓다 보면 더 큰 공포가 다가옵니다. 기약할 수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시스템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혹은 정점에 이르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합니다. 물론 그 경쟁은 불공정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공정성은 강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기계문명이 가져다준 혜택과 저주의 양면성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님은 처음에 실존적 삶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기업의 사서라는 직책이 전문성을 살려주기보다는 그야말로 관리업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은 님에게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대개 ‘대중’은 이 시스템에 순종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시스템을 벗어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데 님은 결행했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님은 남다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은 큰 ‘용기’가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 결행의 결과 두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유는 시스템을 벗어나기 전에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님이 자료실을 만드는데 참여했다면 그것은 자료실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일이었을 뿐, 한시적인 역할이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2년간의 과정에서 다른 준비를 했어야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삶의 양식입니다. 어쩌면 그 뒤로 돌아가서 충분한 준비를 한 다음 사서직을 포기하는 것이 순서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님은 선택했고, 그다음에 님이 선택한 길은 적정해 보입니다. 헤드헌터업을 도우면서 실무를 배우고 그것을 기반으로 스스로 헤드헌터를 하겠다고 시작하신 것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했지만 어느 순간 배신당했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위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 과거 직업은 모두 도제였습니다. 수십 년 일하고 배운 기술로 독립하거나 물려받는 것이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계나 컴퓨터를 이용하므로 도제 기간은 짧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모든 과정은 여전히 도제의 틀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꽃가게를 낸 플로리스트, 빵집을 차린 파티세리, 조리사 자격을 따고 주방에서 일을 배우는 조리사 등 모든 이들이 얼마나 혹독한 과정을 겪는지를 알아보면 그분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운 분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그 과정을 이기고 실존적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갈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물론 그분들이 이룬 각각의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는 제쳐놓고 ‘삶의 양식’에 관한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죠. 한데 님은 이 부분에서 작은 선택의 오류가 있었습니다. ‘헤드헌터’업은 인맥과 광범위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상대가 쉽게 전수 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애당초 불가능 한 일이고 그쪽에서 님을 실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적절한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대가를 치렀다고 여길 것이고요. 혹은 일을 가르친다는 미명하에 적은 임금으로 님을 고용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것이 어느 쪽이건 상대는 님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것입니다.[각주:1]

 

그럼 님은 어땠어야 할까요? 답은 드리지 않아도 짐작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님에게는 ‘결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헤드헌터업이 적성에 맞고 사서직보다 ‘나’에게 자긍심을 준다면 도전하시면 됩니다. 물론 미래가 두려우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업계는 사서직의 경험밖에 없는 미혼여성에게 호락호락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다른 분야들은 어떨까요? 어느 곳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고민입니다. 님은 사표를 던지는 순간 이미 ‘가상’이 아닌 '실재'를 선택했습니다. 안정적인 경제적 자유 대신 ‘나’를 되찾기 위해 격랑이 이는 바다에 몸을 던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뚜벅뚜벅 그 길로 걸어가십시오, 그러다 파도를 만나면 바위에 ‘쾅’하고 부딪히십시오. 부서지고 터지고 깨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피를 흘리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각오가 아니라면 님은 스스로 자신에게 상처만 내면서 귀중한 시간들을 허비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님을 위로할 시간이군요. 지금 우리는 농경시대, 기계의 시대를 건너 사람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지배자들은 시대의 거대한 변화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기계문명의 생산성은 극점에 달했고, 그만큼 재화의 산출 속도는 빨라지며 시스템의 지배자들도 스스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남을 자는 사람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미시적으로 보면 님이 나이를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류의 평균 연령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기완성, 자기성취, 스스로의 힘으로 성과물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길다고 여기지 말고 님이 10년간 무릎걸음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손을 맞잡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언젠가는 님의 상처가, 아니 상처의 흔적이 이웃들에게 자랑스레 보여줄 수 있는 훈장이 될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상담을 한다는 것은 무례한 일입니다. 스스로도 책임질 수 없는 인간이 타인의 삶에 조언을 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님이 지금 하시는 일을 계속하라거나 그만두라거나 다른 일을 하라거나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님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누구도 자신을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님의 성취를 믿습니다. 아니 솔직히 믿고 싶습니다.

 

님은 누구보다 당당한 분이지만 두려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님이 앞으로 10년 후 오늘을 돌아볼 때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님은 이미 삶의 당위성을 내 삶의 가치 안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때문에 그 순간의 용기를 잃어버리고 두려워하고 있는 ‘불안’이 님의 가장 큰 적입니다. 진심으로 같이 믿어보고 싶어집니다. 앞으로는 ‘사람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을요. 제 말에 동의하신다면 먼저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아끼십시오. 그다음 주변의 사람들을 나만큼 사랑하려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때로 내가 너무나도 힘들다고 여겨지면 충정로에 있는 구세군 무료급식소에 가서 하루쯤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의 헌신은 미소로 바뀌고, 그런 당신의 미소에 기댄 분들이 당신에게 조언을 구할 것입니다. 님의 용기는 그분들에게 큰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시작은 그렇게 하면 어떨까요? 사회적 명망가나 유력인사들과 인맥을 쌓기 위해 밤마다 경영대학원을 전전하기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한 발짝부터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 추가하고 싶은 말은 그가 누구이든지 실패하는 이유는 100%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10%의 노력을 더 하고, 이쯤이면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 10%쯤 더 인내를 발휘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흔히 이루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진인사대천명이 아니겠습니까


  1. 평소에 시니컬한 친구를 대상으로 자기가 선택하려는 결정에 대해 물어보면 이러한 답변이 많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건 아니고, 그 두려움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완벽하게 세워나간다고 생각하면 문제없을 듯 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