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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Science/Politics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명저 새로 읽기]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김덕영 | 독일 카셀대 사강사

ㆍ천민자본주의·특권층의 모순에 대한 통찰

대학 4학년 때였던가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1899)을 읽었는데,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사회학과 학생이 그 어떤 사회학 고전보다도 깊이 빠져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한번 원서로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던 기억이 새롭다.

베블런은 이른바 제도학파 경제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되며, ‘베블런 학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친 학자이다. 제도학파 경제학이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영향을 받아서 경제적 현상을 다양한 사회적 제도 및 그 역사적 발전과정과 연관지어 분석하고 설명하는 조류를 가리킨다. 여기서 제도는 좁은 의미의 제도라기보다 더 넓게 영역, 현상 등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도학파 경제학은 역사적 사회과학이 되는 셈이다.

<유한계급론>(우물이있는집)은 베블런의 첫번째 저서이자, 거의 그의 이름과 동의어로 쓰일 정도로 그의 대표작품이다. 여기에서 베블런이 추구하는 인식 관심은 근대의 경제적 삶에서 유한계급이 차지하는 위치와 가치를 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경제학이 아니라 경제이론과 경제사가 인류학·심리학·사회학·역사학과 교차하는, 그야말로 종합과학적 접근방법을 구사하는 연구서이다. 심지어 베블런을 사회학의 대가로 간주하는 사회학사 책도 있다(루이스 코저의 <사회사상사> 참조). 바로 이 점이 <유한계급론>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책의 내용을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해준다. 게다가 일상적 삶에서 접하는 현상을 많이 언급함으로써 이해에 도움을 준다.

베블런에 의하면 유한계급은 사회에 유익한 생산노동에 종사하지 않고 그 위에 기생하면서 자신의 부나 실력을 과시함으로써 사회적 명예와 존경을 얻고자 하는 인간집단이다. 유한계급은 역사적으로 원시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존재한다. 또한 유한계급은 경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과시적 여가(시간과 노력의 낭비)와 과시적 소비(재화의 낭비)를 그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유한계급은 심리적으로 보수적이고 감정적이며, 사회적으로 제도화되고 분화된다.

<유한계급론>은 경제적 및 사회적 현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첫째로, 오늘날 자본주의, 특히 한국 자본주의의 한 본질적인 특성,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로 ‘도배한’ 한국의 부자들과 특권층에 대해 심층적인 통찰을 얻길 원하는 사람들, 또는 이 천민자본주의와 그 천박한 주도세력에게 분노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베블런은 마르크스 이후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대한 가장 탁월한 이론가이자 통렬한 비판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것도 마르크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 접근방식 및 언어와 문체에 의존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또 다른 심층적인 조망을 제공한다. 요컨대 <유한계급론>은 한국 자본주의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좋은 거울이 될 것이다.

둘째로, 응용수학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주류경제학에 실망한 사람들, 또는 역으로 거기에 매몰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보면 경제학의 인식영역이 얼마나 광범위할 수 있는가가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사실 주류경제학은 수학적 접근방식에 기댐으로써 고도의 정치함과 세련됨은 얻었지만, 그 대가로 생동하는 인간의 삶과 행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경제학을, 아니 사회과학 일반을 인간의 삶과 행위에서 출발하는 인간학으로 본다. 그 삶과 행위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리고 역사적 차원에서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현상과 과정을 인식의 지평으로 끌어들이는 역사적 문화과학 또는 사회과학으로 본다. 이 인간학적 경제학 또는 역사적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으로서 경제학의 가능성은 누구보다도 소스타인 베블런한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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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162108335&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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