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대통령님이 얼마나 책을 가까이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방문객 인사를 마감했던 12월 이후 독서량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랜 시간 앉아있기 힘드셨어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관심 분야는 더욱 넓어졌고 선택하는 책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서거하기 1주일 전에도 여러 권의 책과 자료를 구해달라고 주문하셨습니다. 클린턴 집권 초기 개혁을 한국에 소개한 책들, 클린턴 정부 정책관련 자료, 과거에 읽었던 「디 브리핑」(이철희), 「신군주론」(딕 모리스), 「해밀턴 프로젝트」 등이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대통령님께 전해드렸고 나머지는 찾고 있던 중에 대통령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대통령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 가운데 어느 한 대목 가슴을 치지 않은 게 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동안 책과 자료를 수집해 전달했던 사람들에겐 “책을 읽을 수 없고 글을 쓸 수도 없다”는 말씀이 그 어떤 구절보다 강한 충격으로 와 닿았습니다. 언론의 무차별적인 손가락질 속에서 칩거 동안 유일하게 마음 편히 하실 수 있는 일이 책읽기였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그조차 할 수 없었다면 그 아픔과 그 고통이 얼마나 크셨을까요.

이제 더 이상 대통령님은 책을 읽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훌륭한 책도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제 가장 최근에 대통령님이 읽으셨던 책, 대통령님을 만날 기회를 가졌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오래오래 기억해 주십시오. 대통령님과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책들입니다.


*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 W.F. 화이트, 나라사랑(1992)

봉하마을로 귀향하신 뒤 대통령님이 가장 애정을 쏟았던 일은 봉하마을을 생태마을로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생태농업으로 오리쌀을 재배하고, 화포천을 가꾸고, 봉화산을 가꾸고, 생태연못을 꾸미는 일련의 작업도 봉하마을을 생태마을로 가꾸고 싶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모든 주민이 공동체를 이루는 이상적인 생태마을의 조성에 관심을 갖다 보니 관련한 책들을 찾아 읽는 일도 많았습니다. 특히 관심을 가졌던 책은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이었습니다.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스페인의 작은 도시인 몬드라곤을 조명한 책입니다. 몬드라곤은 노동자 생산협동조합을 통해 모든 것을 소유, 분배하며 대기업보다 빠르게 성장해 온 도시인데 이 책은 몬드라곤의 성장 비결과 경영체제, 조직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자주 꺼내 읽으신 책입니다.


*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작은나라 쿠바의 커다란 도전
- 요시다 타로 (안철환 옮김), 들녘(2004)

미국의 경제봉쇄로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있던 쿠바의 아바나 시민들이 맨손으로 도시를 경작하여 220만 명의 자급을 이뤄낸 신화는 유명합니다. 이러한 생태도시 아바나가 탄생한 배경을 다루고 있는 책이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입니다. 대통령님은 봉하마을을 생태마을로 가꾸는 지혜를 이 책에서 배우고자 했습니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 빌 브라이슨 (이덕환 옮김), 까치글방 (2003)

대통령님의 관심은 법률과 정치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독서대를 발명했고 인명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을 정도로 과학 영역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과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역사와 현재를 알기 쉽게 정리해 놓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도 이런 관심의 반영입니다. 대통령님은 수시로 인터넷 서점을 방문해 읽을 만한 책을 찾아보곤 하시는데 2003년에 나온 이 책도 그런 과정을 통해 구입해 읽으셨습니다.


*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Transforming Leadership
-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조중빈 옮김), 지식의날개 (2006)

대통령님의 역사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습니다. 지난 겨울 읽으셨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은 역사와 리더십에 대한 관심에서 대통령님이 고른 책입니다. <변혁의 정치 리더십 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원시 아프리카 부족장과 중세유럽 절대군주, 미국의 여러 대통령들 사례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는 리더의 임무와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정동영 국회의원 등 현실 정치인의 추천도 대통령님의 눈길을 끈듯합니다.


*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 돌베개 (2009)

대통령님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내온 <후불제 민주주의>도 관심 있게 읽으셨습니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대한민국 헌법을 유시민 장관 특유의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있는데, 저자와의 개인적 인연이 각별한 만큼 더욱 소중하게 간직하셨던 책입니다.


* 유엔미래보고서 - 미리 가본 2018년
- 박영숙, 제롬 글렌, 테드 고든, 교보문고(2008)

재임 시절 비전2030을 제시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대통령님은 우리 사회 미래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30년간의 보수시대가 저무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미래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유엔미래포럼이 매년 발간하는 <유엔미래보고서>도 그런 이유로 찾아 읽으셨습니다. 이 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변화에 대한 주요 예측과 더불어 기후변화, 물 부족, 인구와 자원, 빈부격차 등 지구촌 미래를 위협하는 15가지 키워드를 통해 그에 대한 방대한 분석과 전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유러피언 드림 The European Dream
- 제레미 리프킨 (이원기 옮김), 민음사(2004)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은 폴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와 함께 대통령님이 퇴임 뒤 가장 가까이 두고 읽었던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책은 “개인의 자율성과 부의 축적이 핵심인 아메리칸 드림은 급변하는 미래 사회를 지탱할 수 없으며, 긴밀히 연결된 네트워크 세계에서 타인간의 관계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유러피언 드림이야말로 이 시대의 새로운 비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통령님이 퇴임 후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권했던 책입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자주 하셨던 책이 바로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입니다.


* 소유의 종말 The Age of Access
- 제레미 리프킨 (이희재 옮김), 민음사(2001)
* 수소혁명 - 석유 시대의 종말과 세계 경제의 미래
- 제레미 리프킨 (이진수 옮김), 민음사(2003)

유러피언 드림에 대한 대통령님의 호감은 저자 제레미 리프킨에 대한 호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유러피언 드림>에서 나타난 리프킨의 시각이 어떻게 구체화됐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셨습니다. 이전 저작까지 정독하는 열의를 보였습니다. <소유의 종말>, <수소혁명-석유시대의 종말과 세계 경제의 미래> 등이 그러한 책들입니다.

리프킨의 책을 가까이 하셨던 것은 내용에 공감하는 바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학문의 영역을 넘나들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논지를 펼쳐가는 리프킨의 서술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으셨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리하는 책을 한번 써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말씀도 자주 하시곤 했습니다.


* 슈퍼자본주의 Supercapitalism
- 로버트 라이시(형선호 옮김), 김영사 (2008)

미국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자본주의>도 대통령님이 자주 언급하셨던 책입니다. 라이시는 1970년대 이후로 모든 것들이 급격하게 변했으며 대기업들은 훨씬 더 경쟁적이고 지구적이고 혁신적이 되면서 소위 슈퍼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설명합니다.

이같은 변화의 과정에서, 소비자와 투자자인 우리의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지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으로서 능력은 퇴보했다고 지적합니다. 라이시는 이 책을 통해 정치에 개입하려는 기업, 민주주의에 침투하려는 슈퍼자본주의를 경고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대통령님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더 플랜 The Plan
- 람 에마뉴엘, 브루스 리드 (안병진 옮김), 리북, (2008)

미국 민주당의 전략가인 람 메마뉴엘과 브루스 리드의 <더 플랜>은 미국의 변화를 위해 미국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젠다로 정리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대통령님은 재임 시절 읽었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와 이 책의 관점 차이를 말씀하시곤 했는데,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읽었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 장하준 (이종태, 황해선 옮김), 부키(2006)

지난 겨울 대통령님의 주된 관심사는 ‘국가의 역할’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국가는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게 대통령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하여 관련 서적들을 주문하여 탐독하셨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장하준 교수의 <국가의 역할>이었습니다.




* 시장인가, 정부인가?
- 김승욱, 김재익, 유원근, 조용래, 부키(2004)

국가의 역할에 관심은 <시장인가, 정부인가?>라는 경제학의 오랜 논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통령님은 예전에 읽었던 여러 책을 다시 꺼내들어 자유주의 성립과 몰락, 케인즈주의의 등장,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고전적 자유주의가 부활하게 된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는 한편, <시장인가, 정부인가?> 등의 국내 서적도 참고로 하여 ‘시장’을 바라보는 보수적 시각과 진보적 시각의 차이를 구명해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 사회정책의 제3의 길 - 한국형 사회투자정책의 모색 (2008)
- 김혜원, 양재진, 이종태, 정형선, 백산서당(2008)

<사회정책의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의 발전모델이나 전통적 복지국가 모델이 아닌 새로운 사회투자정책을 모색하는 책입니다. 대통령님은 <시장인가, 정부인가?>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에 관심을 두셨습니다.



* 제 3의 길 (The)Third way
- 앤서니 기든스 (한상진 옮김), 생각의나무(2001)

보수, 진보에 대한 관심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케인즈주의를 대체하여 경제학을 지배하게 된 근본 배경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1980년을 전후하여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보수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진보가 실패했기 때문인가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인가?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갖던 노무현대통령은 유럽 사민주의 진영의 제3의 길 또는 신중도노선을 전면으로 재검토해 보기로 합니다. 가장 먼저 꺼내 든 책이 앤서니 기든스의 <제 3의 길>이었습니다.


* 노동의 미래 Where Now for New Labour
- 앤서니 기든스 (신광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2)
*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Over to You, Mr. Brown
- 앤서니 기든스 (김연각 옮김), 인간사랑 (2007)

대통령님은 <제3의 길>을 시작으로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 <이제 당신차례요, Mr. 브라운> 등을 순서대로 다시 읽으셨습니다. 이미 읽으신 책을 다시 찾아 읽으신 이유는 토니 블레어로 대표되는 유럽 진보진영의 리더들이 제3의 길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 대한 탐구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이러한 지적 호기심의 배경에는 진보진영에게 ‘제3의 길 이외 선택은 없었던가?’라는 의문이 자리잡고 있던 듯합니다. 최근까지도 대통령님은 이러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종류의 책을 주문하셨기 때문입니다.


* 생각의 오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 토머스 키다 (박윤정 옮김), 열음사, (2006)

최근 대통령님은 사람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하게 되는 심리적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하셨습니다. 또 자신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으려 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셨습니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 하던 중 추천 받은 책 가운데 하나가 <생각의 오류>였습니다.

이 책은 누구나 구조적으로 저지르기 쉬운 ‘생각의 오류’를 6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데 “통계수치보다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더 솔깃해한다”, “내 생각에 의문을 품기보다 확신하려 든다”, “세상에는 운과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있음을 간과한다”, “인간의 기억은 이따금 부정확하다” 등이 이러한 생각의 오류를 낳는 이유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Opening Skinner's Box
- 로렌 슬레이터(조증열 옮김), 에코의서재 (2004)

이 책도 심리학에 대한 대통령님의 관심에서 선택된 것입니다. 20세기 심리학이 인간 행동을 관찰한 끝에 던진 질문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복종의 문제, 사랑의 본질, 군중 심리와 방관자 효과, 기억의 메커니즘 등 인간 심리와 관련된 핵심 주제를 파헤치는 실험을 통해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예리하고 중요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디케의 눈
- 금태섭, 궁리(2008)

법률가로서 대통령님의 관심을 반영하는 책입니다. 18편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일반 국민을 비롯하여 약자와 소수를 위한 법체계가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16)

늘 새로운 것을 꿈꾸는 사람 안철수 

정부가 사령관 역할 하던 시대는 갔다

 

 

영웅이 역사 만든다고 생각지 않아 … 실패 용인하면 성공 확률은 높아진다
영재교육·수월학습 안 믿어 … 교육은 기능과 속도 위주로 가면 실패
위험한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 좌파·우파는 머리 나쁜 사람들 사고



 

인터뷰 동안 단 한 번도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어제의 안철수’보다 ‘오늘의 안철수’가 더 못한 것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안철수 박사는 모든 언론사에서 1순위 인터뷰에서 후보로 꼽는 사람이다. 하지만 직격인터뷰에서는 늘 다음 순위로 밀려났다. 그의 이야기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검색창에서 안철수를 쳐보면 그를 인터뷰한 기사가 넘쳐난다. 더구나 10년 이상 수 많은 인터뷰를 해왔음에도 그의 말은 늘 수미일관하다. 허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 인터뷰어의 입장에서는 그를 만나서 물어볼 새로운 거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이를테면 그는 전투에 임하기도 전에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장수인 셈이다.

안철수 교수, 안철수 사장, 안철수 교수, 그리고...


안철수 박사를 만난 곳은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 연구실이었다.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그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참 질문이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제가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누군가가 물어주면, 대답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들이 정리가 되죠. 좋은 질문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21세기 컨버전스(융합)의 시대에는 좋은 질문의 역할이 좋은 답변보다 중요한데, 우리는 너무 좋은 답에만 익숙해 있어요.”

(허를 찔렸다. 의도했건 아니건 그가 선공을 날린 셈이었고, 깊은 내공이 실린 초절정 고수의 부드러운 일격에 인터뷰어는 깊은 내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Q. 선생님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던진 화두, ‘좋은 질문’에 대해 고민하며 던진 첫 번째 우문이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겸양도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저는 늘 고생 좀 안하고 실력을 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요. 한 분야도 제대로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무언가 하나를 하기 위해서는 정말 죽을 만큼 괴롭죠. 절대 꿈에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대입에서 일등을 한 친구들이 늘 교과서에 충실했다고 말하듯, 그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고시 삼관왕이 거만한 표정으로 '나는 원래 머리가 나빴다'고 말하는 유의 겸양은 아니었다. 진짜 그렇게 믿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재능이상으로 노력을 했던 수재형 인간이다.)

Q. 선생님은 계속 변신하면서 자신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키워 온 대표적인 사람으로
여겨지는데요. 그렇게 자신의 가능성을 계속 키워 온 이유는 무엇 입니까?


음, 레버리지를 키운다는 것은 효율성을 극대화 한다는 뜻인데요. 저는 오히려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을 해 온 사람입니다. 의학을 20년 공부했지만 결국 활용하지 못했고, 프로그래밍을 1만 시간 이상 했지만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죠. CEO 역시 10년 정도 하면서 좀 편해질 만 할 때 다른 공부를 하러 떠났고, 지금은 학교에 있잖아요. 만약 효율성을 ‘과거 가치를 활용하는 연속성’이라고 정의한다면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그렇지만 이런 변신들은 스스로 택한 일인데, 말씀하신 대로 ‘과거가치’를 버리면서
그렇게 숨 가쁘게 변신해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종교가 없어서 내세를 믿지는 않지만, 인생을 수동적으로 사는 것에 반대합니다. 동시대인과 서로 돕고 좋은 관계를 맺고 살고 싶어요. 과학자로서 생각하면 우주는 먼지로 (Star Dust) 구성되어 있잖아요. 여기서 만들어진 생명체가 나인 것이지,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닐 거에요. 다시 우주먼지로 가는 거죠. 그래서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이 가장 두려워요, 그 마지막 순간에 실패다 싶으면 더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그 순간의 ‘의미와 재미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요. 변신처럼 보이는 것은 그런 선택의 결과물일 뿐이에요.

Q. 다음 ‘변신’은 어떤 것 입니까?

나도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어요. 총장님께 임명장을 받을 때 임기가 2027년까지로 되어 있어요. 테뉴어(석좌교수)인 셈이죠. 한데 제 명함에는 ‘안철수 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가장 먼저 적혀있어요. 교수는 상근이고 이사회 의장은 비상근인데 말이죠. 총장님께는 죄송하지만 과연 내가 정년까지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건 자신이 없어요.

Q. 그럼 이미 다른 변신을 위한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그건 아니에요. 앞으로 어느 순간 더 의미가 크고 보람과 재미가 있는 일이 닥치면, 혹은 그걸 안 하면 후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럴 수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의사를 그만둘 때 6개월, 안 연구소 그만 둘 때 1년을 고민했어요. 1년 내내 그것만 고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결과 죽을 때 후회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야 그렇게 하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거리가 없어요.

Q. 지금까지 의사, 기업가, 교육자로 사시면서 단순히 그 역할 자체가 아닌,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를 많이 던지셨는데, 혹시 앞으로 정치를 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정치… 우선 저는 정치를 몰라요. 하지만 저는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영웅이 역사를 만든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시 시대의 부름에서 앞에서 어떤 사람이 영웅으로 불렸을 뿐이다’고 생각하죠. 하물며 제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Q. 참여정부 시절 정통부 장관 제의가 왔을 때 거절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까?

그때는 잘할 자신이 없었어요. 내 기준으로 성공이라는 기준에 맞출 자신이 없었던 거죠. 당시에는 시야가 넓지 못했고 실행능력도 부족했어요. 스스로 덜 여문 과일이라 생각했죠. 그러고 보니 ‘내 기준에 불충분했다’가 정답인 셈이네요. 그리고 저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를 좋아하지 않아요.

Q. 국가사회가 다시 요청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건 그때 가서 또 생각할 문제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에요.

(통상 인터뷰에서 대개 이런 질문들은 상당한 긴장을 유발한다. 서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인터뷰이와, 속내를 살피려는 인터뷰어의 탐색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 박사는 담담했다. ‘그의 말은 의미가 투명하다’는 세간의 평가들이 괜한 말이 아닌듯했다.)

Q. 앞서 말한 ‘내 기준의 성공’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성공하는 사람들은 재능이 있어서 그랬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죠. 하지만 한 사람의 성공은 사회가 그에게 가치를 준 것이에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다른 사람이 개입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전형적 의미에서의 성공은 의미가 없어요. 내 것이 아니니까요.

Q. 그런 측면에서 선생님은 스스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저는 다른 것을 만들고 싶은(Make difference)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크로마뇽인이 그린 그림을 보고 후세에 ‘누군가가 그림을 남겼구나’라고 하지, 그걸 누가 그렸느냐에 의미를 두지 않잖아요. 저 역시 뭔가 다른 걸 남기려는 것뿐이죠. 그런 것을 남기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기고요. 그 점에서 저는 아직 성공과 실패를 판정 할 수가 없어요.

Q. 그것은 지나친 겸손인 것 같은데요. 이미 ‘안철수 박사’는 한국사회의 성공코드가 아닙니까?

외부적 성공이 개인의 성공은 아니죠. 남들은 성공과 실패를 평가해도 자신은 반대일 수 있잖아요, 나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이 추락하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누구나 처음에 무엇인가 꾸준히 노력하면 실력이 쌓이죠. 그때 주위에서 과대평가하죠. 그런데 그 다음 단계에서는 이 사람이 꾸준히 노력하는데도 저평가 받는 시기가 와요. 하지만 노력을 계속하면 다음에는 또 재평가를 받으면서 오버슈팅을 하기도 하죠. 주변의 평가란 그런 것이에요. 이런 걸 성공으로 생각하면 추락하는 거죠.

Q. 그런 자세 때문인지 선생님은 적이 없는 것 같더군요. 어쩌면 저명인사 중에서 가장 적을 만들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대체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건 아니에요. 저는 99년에 두 가지 큰 경험을 했어요. 99년 11월에 '벤처의 99%는 망한다'는 발언을 한 후에 너무 욕을 많이 들어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하루를 보냈었죠. 한국말로 그렇게 많은 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Q. 저도 그때 생각이 나는데, 그 말은 벤처거품을 공개 경고한 것이었는데,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습니까?

당시 SKT 시가총액을 KTF가 추월했어요. 명백한 버블이었죠. 단지 코스닥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니까요. 그것을 보고 버블을 확신했죠. 그래서 이 버블에서 적절한 경고를 해서 희생을 줄여야 벤처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그 발언 이후 ‘벤처 기득권자가 후배들의 성공에 배 아파한다’는 비판을 심하게 들었죠. 심지어는 그 후 코스닥이 좀 더 오르자 '시장이 안철수를 심판했다'고 까지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Q.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이익이 개입되어 있는 일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격한 반응을 보이죠. 그럼 두 번째는 어떤 일이었습니까?

99년 말 ‘Y2K’ 문제가 불거졌을 때죠. 다들 걱정을 하기에 저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죠. 그랬더니 모든 언론과 여론이 그것을 외면하더군요. 당시 안 연구소가 제법 공신력이 있을 때였는데도 ‘Y2K’ 라는 자체가 하나의 큰 시장이었으니 모두 애써 외면한 거죠. 그 후 발언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사회적 시스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밀려왔어요.

Q. 그럼 어떤 계기로 다시 발언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 후 4년이 지나서 참여정부에서 관료, 벤처기업인, 투자자들이 모여서 '벤처산업조망' 회의를 하는데, 말미에 이헌재 당시 부총리께서 ‘벤처의 99%가 망하는 것은 국민의 상식’이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맞장구를 쳤어요. 예전에 제가 그 말을 했을 때 심하게 비난했던 분들도 있었죠. 그분들은 제가 한 말을 다 잊은 거죠. 그때 ‘사람은 기억을 왜곡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벤처산업이 보증수표라 믿고 예전에 욕을 하던 사람들도 마치 자기가 오래 전부터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스스로 생각하는구나, 생각했죠.

Q. 그래서 이젠 바른말을 해도 욕을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아뇨. 사실 저는 그것이 오히려 감동적이었어요. 사람은 생각이 바뀐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처음에는 그 발언으로 고생했지만, 나중에는 돌이 굴러가는데 밀알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죠. 그것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Q. 그런 선생님의 시각으로 본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입니까?

우리나라는 지금 가장 위험한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어요. 좌파, 우파는 머리 나쁜 사람들의 사고죠.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것이니까요. 지금 시대는 탈권위주의로 나가고 있어요. 정치• 사회•문화•기술까지 모두 그렇죠. 기술 역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기술만 살아남고 선택되고 강해지죠. 20세기에는 정보를 독점하고 가공하고 전달하는 기득권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대중의 시대고요.

Q. 흑백논리 아래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재단하려는 것이죠. 집집마다 가훈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의 등수를 매길 수 없잖아요, 건방진 생각이죠. 사람의 생각에 우위가 없는 것인데요. 모든 가치관은 중요해요. 그 사람의 역사가 반영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타인에게 ‘가치판단이 미숙하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가끔 그렇지 않은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곤 하죠. 그런 사람들이 사회를 어렵게 만들고요. 머리 좋은 사람들이 흑백논리를 가지면 훨씬 위험해지죠.

Q, 말씀을 들으면 ‘마이너리티의 정서’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하지만 사실 선생님이야 말로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이너서클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던가요?

저는 항상 ‘마이너리티 오피니언 리더’이더군요.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실까지 부인하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너서클에 대한 소속감도 없고 정체성에 대한 자각은 더 없어요. 사람의 소속은 상대적이거든요. 결국 기득권이란 ‘나에게 안 보이는 세상을 없는 세상으로 보느냐, 상대적으로 이해하느냐의 차이’일 텐데 그 점에서 저는 마이너리티에 가깝죠.

Q. 하지만 우리사회의 리더십이 점점 엘리트 교육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이것은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영재교육이나 수월학습을 안 믿어요. 조기 졸업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누가 있던가요? 없어요. 사회에서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는 일부일 뿐인데 그런 사람들은 더 중요한 대사회․대인관계에 소홀하거든요. 지금같이 엘리트 스포츠선수처럼 뽑아서 도덕적인 리더와 엘리트 리더가 나올 수 있겠어요? 미국금융위기의 핵심은 전부 와튼․하버드․스탠퍼드 MBA 출신들이었어요. 과연 이런 엘리트들이 사회에서 보탬이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차라리 없는 게 낫죠. 교육은 기능과 속도위주로 가면 실패하죠.

Q. 그래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맞아요, 인위적 시스템이 문제죠. 어떤 시스템을 가지느냐에 따라 교육은 달라지는데 지금 우리 시스템은 사회가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죠. 결국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없으면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 법인데, 이런 게 위기라는 인식이 없는 것이 진짜 문제죠. 공감대 형성이 시급한데도, 지금 우리사회에 공감대가 없고 그것을 이끌어 낼 리더와 리더십이 없어요.

Q.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법이 있나요? 위기의 크기에 비해 문제의식이 분산되어 있어요. 그러니 해법이 제각각이고요, 그것이 진짜 위기죠. 그런 점에서 현재는 유례없는 위기입니다. 지금 경제위기 위기지만, 크게 보면 5년 내에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지 몰라요.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위기의식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에요.

Q. 그래도 위기의식은 많이 있는 것 같은데요. 선생님이 말하는 위기의식은 다른 것인가요?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자꾸 ‘대기업이 잘 돼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국가경제도 포트폴리오가 있어야죠, 환란 때 이미 증명되었듯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가 공존해야하고요. 대기업 근로자가 130만, 공무원이 약 100만인데 그럼 나머지 4000만은 어디서 먹고 살아야 하겠어요? 문제의식의 포커스가 자꾸 대기업으로 가면 안 되는 거죠. ‘대기업총수들 사면시켜줘도 일자리 창출을 안 해서 섭섭하다’ 이렇게들 말하지만, 그것은 이미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에 자선사업을 요구하는 것과 같아요.

Q.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나 벤처 육성이 필요하다는 얘기인가요?

대기업이 파트너 죽이기로 나가면 미래의 이익을 빼앗아 가져오는 것과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 환율이 올라도 수출 대기업들의 이익이 안 나죠? 이유는 중요부품을 ‘글로벌 아웃 소싱’, 즉 일본이나 대만의 중소기업에서 수입하기 때문이에요. 건실한 중소기업을 못 키운 대기업이 지금 그 칼을 맞고 있는 거죠.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국가의 미래가 없어요.

Q. 중산층의 붕괴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하시는군요?

우리나라 대기업이 이익의 상당부분을 국내에서 내면서 글로벌 기업이라고들 하죠. 한데 스스로 자문해봐야 해요. 국내 소비자가 사주었기 때문에 기술이 안정되어 해외로 나간 거죠. 그런데 중소기업을 죽이면 그곳에 다니는 중산층들이 무너지고, 결국 소비자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 지금의 구조로는 글로벌 기업의 국외 경쟁력이 없어요,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것이 ‘시혜’라는 생각을 하는 한 아직 멀었죠.

Q. 한데 ‘벤처’를 살리자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가, 과거 벤처기업의 ‘자본놀음’이
라는 부정적 정서도 상당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2003년도 그때 회의에서 이헌재 전 총리도 '제 2의 벤처붐'을 이야기했었죠. 하나의 용어가 자리 잡으면 안 바뀌는 거예요. 이젠 새로운 용어와 개념적 접근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벤처란 말을 쓰지 말자고 했죠. 벤처는 ‘첨단기술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빠르게 성장한다’는 엘리트적 의미가 강했거든요. 진짜 기업가 정신은 ‘구멍가게라도 만들어서 고용을 창출하고 같이 산다는 생각’인데 말이죠. 벤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정신이 중요한 풍토가 되어야 하죠.

(여기서 화제를 돌렸다. 지금까지의 질문은 이번 인터뷰의 주제인 ‘사회적 멘토’로서의 안철수를 기준으로 던진 것들이었지만,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날 안철수를 만든 과정과 그의 개인적 철학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Q. 2000년 초 상당한 자본이익이 가능했는데 ‘안철수 연구소 지분’을 지금까지 그대로 가지고 계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더구나 코스닥 시장의 거품까지 예측했었는데요.

스스로 ‘지금은 버블이다, 올해 많은 기업가들 중에서 금융사범이 나올 것이고 코스닥이 하강할 것이다’고 하면서 내가 뒤로 이익을 내는 것은 안 되는 일이죠. 인생과 사업은 굴곡이 있고 안 될 때 어떻게 보내느냐가 핵심이거든요. 그래서 어려울 때 내가 모범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혹시 선생님은 청교도주의자(혹은 금욕주의자) 이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청교도적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어요. 어떨 때는 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살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Q. 지난 10년간의 인터뷰를 찾아봐도 한 번도 말을 뒤집거나 표리부동한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던데, 대체 그런 일관성을 어떻게 유지 하십니까?


노력한 적은 없어요, 과거의 결정을 돌아봐서 지금과 맞추려고 하면 오히려 자꾸 달라지죠. 자기 스스로 마음 편하게 살고, 스스로 들여다보고 스스로 느껴가야죠. 앞을 보고 살아가야 원칙이 생기는 거지 뒤를 돌아보며 살면 원칙이 없어지죠.

Q. 스스로 생각하는 안철수 박사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저는 ‘내부가치 지향적인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나와의 비교가 가장 중요해요.

Q.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저는 살아간 흔적이 남고 싶어요.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없었을 때와 같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사고’이건, ‘제도’이건 무엇이건 간에 그저 흔적이 남기를. 아까 말씀 드린 차이와 흔적을 만드는 일(Make difference)을 했으면 좋겠네요.

Q. 요즘 시대에 정부는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정부의 역할이 예전에는 모든 권한을 다 가지고 끌고 가는 커멘더, 즉 사령관 역할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사회 각 분야가 성숙했어요. 이젠 정부가 끌고 갈 일보다 각계각층을 설득하고 조율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중요하죠. 예전에는 깃발 들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이제는 정부가 힘들고 일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답답하고 티가 안 나고 시간이 걸리겠죠. 정부가 이 티 안 나고 답답한 것을 받아들여야 우리사회가 제대로 갈 수 있어요.

Q. 그럼 기업과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요람이죠. 하지만 실패를 용인한다는 게 달라요. 점점 성공의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하면 재기가 어렵기 때문에 20대 인재들이 도전을 꺼려요. 그래서 20대가 안정지향이 되는 거죠. 사회시스템이 이들을 소떼로 몰고 가는 거예요. 불량 청소년은 없어요. 불량어른만 있지요.

Q.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말씀하신 ‘닌텐도’가 우리에게는 왜 없냐는 화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참 좋은 화두를 던졌어요. 정말로 좋은 질문이죠. 그러나 질문만으로 그치면 안 돼요. 그런 회사가 안나오는 사회요인을 먼저 바꿔야죠.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이고요. 대통령이 ‘닌텐도가 왜 안 나와? 왜 아이디어가 없어?’ 라고 한 건 얄팍한 질문이 아닐 거라 믿어요. 그럼 이제 정부가 고민해봐야 할 것이 생겼네요. 세계적으로 표준을 장악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워야죠, 상생으로요.

Q. 최근 들어 안철수 연구소가 다소 정체된 느낌인데요. 선생님이 CEO를 그만둔 때문일까요?

퇴임 시 매출 300억, 영업이익 100억이었는데 지금 매출은 두 배, 이익은 비슷하죠. 저는 공익적 기업이라는 안 연구소의 정신을 믿어요, 그것이 안 연구소의 펀더멘털이죠. 이번에 이어받은 신임 CEO가 이 정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죠. 지금 사업구조를 프로덕트에서 서비스 비즈니스로 바꾸는 중이에요.

Q. 그 동안 안 연구소의 변신노력이 더뎠다고 보시나요?

우리 회사가 예전에는 백신에서 보안사업을 했지만 이제는 ‘보안 서비스’로 가고 있어요. 문어발 확장보다 한 분야에서 퍼져 나가야 하는데 그 점이 약간 부족했죠. 지금 인터넷에서 ‘사회적 네트워크’에 기회가 많아 보이는데 이쪽에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사내 벤처로 시작한 고슴도치 같은 것도 새 영역에 대한 작은 실험 같은 것이죠. 약간 늦었지만 진행 중입니다.

Q.그럼 안철수 연구소는 이사회의장 안철수 박사를 믿고 장기 투자해도 되나요?

우리 회사의 가치는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가격에서 부족한 부분은 노력 할 것입니다.

Q. 요즘 코스닥 시장이 뜨거운데.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의 문제점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은 효율적 시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루머와 테마 같은 불투명성이 오히려 프리미엄이 되고, 투명성이 반대로 평가절하 요인이 되는 시장이죠. 이런 점은 국가적 망신이에요. 코스닥 시장은 불투명함을 제거해야 하는 숙제가 있어요.

Q. 상당한 독서광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서가에 전공 이외의 책이 가득한데요?

저는 활자 중독증이 좀 있어요. 정신병처럼 눈에 글자가 띄면 마지막 글자까지 읽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서관의 책을 모두 읽었죠. 덕분에 자의식이 강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나의 에고(자아)에 어떤 것이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겠어요.

Q. 많은 책을 읽으셨는데 독서법도 남달랐다고요?

독서방법은 좀 달랐어요. 예를 들어 소설을 읽으면 줄거리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신 주인공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관심이 갔어요. 예를 들어 ‘금삼의 피’를 읽으면서 ‘왕인데 왜 이렇게 불행할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왜 화를 내지?’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해봤어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니까 정작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스토리를 잊어 먹더군요.

Q. 선생님이 마음이 약해서 거절을 잘 못하신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저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요. 고졸여사원에게도 아직도 반말을 못하거든요.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다 이해가 되는 일이에요. 저는 가장 불행한 시간이 이메일로 거절의 답을 쓰는 것인데 하루에 한 시간 반이나 걸려요, 때론 그런 처지가 서글퍼 보일 때도 있어요.

Q. 의사로서도 성공했을 것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의대교수로서 3가지 조건에 부합되더군요. 우선 저는 신경생리가 재밌었어요. 또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요. 그러나 이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백신개발은 당시로서는 나 혼자였거든요, 내가 안 하면 사라지는 거였죠. 그래서 처음에는 7년간 낮에는 의대교수, 밤에는 백신개발자 일을 했는데, 피곤한데도 일단 개발을 시작하면 새벽까지 푹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같은 정도로 잘하는 일이라면 더 재밌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죠.

Q. 마지막으로 앞으로 인생의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계십니까?

나는 장기계획을 세우는데 잘 안 맞는 사람이에요. 어릴 때는 아버지처럼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진료하는 의사가 될 줄 알았어요. 열심히 살면 의사가 될 줄 알았는데 열심히 사니까 의사를 그만두게 되더군요. CEO 때도 마찬가지고요. 지금도 가장 편한 일은 안 연구소 CEO 일 테지만, 결국 교수를 하고 있죠.

마치며

대개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늘 대상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게 마련이다. 자료를 조사하고 저서를 읽다 보면 인터뷰이에 대한 간접적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면 그 느낌의 생소함에 당황하곤 한다. 때문에 때로는 인터뷰이의 약점은 최대한 가리고, 가능하면 장점을 부각하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것이 인터뷰에 응해준 수고로움에 대한 예의이자 사람 사는 세상의 예(禮)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 박사는 딱 느낌 그대로였다. ‘정돈되고 정갈하며, 투명한 사람’. 사실 이 이상의 상찬을 못하는 것이 아쉬울 만큼 그는 인격적으로 인터뷰어를 매료시켰다. 다만 이번 인터뷰의 주제가 ‘어려운 시기의 멘토’였기 때문에, 그의 인간적 매력을 외면하고 건조하고 딱딱한 인터뷰로 진행했다는 것이 유감스러울 따름이었다.

박경철(donodonsu@naver.com)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문]서울대 교수 124명 시국선언 성명서

머니투데이 | 장시복 기자 | 입력 2009.06.03 10:49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광주

 

[머니투데이 장시복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은 단지 애도와 추모의 물결만은 아니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착잡하기 이를 길 없는 심경으로 나라의 앞날을 가슴속 깊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각계각층의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러낸 것을 계기로 우리 모두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으며 또 열어야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남발되었고 온라인상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수렴이 가로막혔으며, 이미 개정이 예고된 집회 관련 법안들의 독소조항도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야의 동의로 지난 3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출범했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회의 공개나 국민여론 수렴을 반대함으로써 위원회는 표류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법 처리 강행 방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에 따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전국 법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여론에 따라 일단 포기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탈바꿈하여 되살아나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도 큰 위험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때 집회의 강제 해산과 노동자 대량연행과 구속으로 맞서는 일 또한 구시대적 대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 과정 또한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검찰은 국가원수를 지낸 이를 소환조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3주가 지나도록 사건 처리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추가 비리 의혹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인격적 모독을 집요하게 가했다. 이는 엄정한 공직자 비리 수사라고 하기 곤란하며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농성에 대한 무모한 진압으로 빚어진 참사는 올해 벌어질 갖가지 퇴행적 사건을 예고했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이 수사기록 중 핵심적인 대목의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재판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서울 서부지법 민사12부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세입자의 재산권, 주거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현 정부의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적 애도 속에 주어진 국민적 화해의 소중한 기회를 잘 살리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를 우리는 간절히 희망하며, 다음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해야 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1. 현 정부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1.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며,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현 정부는 용산 참사의 피해자에 대해 국민적 화합에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경제 위기 하에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집권층이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서 타오르고 있는 민주적 요구에 대해 진지하고 성의있게 대응함으로써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국민적 화합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큰 길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을 것을 간곡히 바란다.

2009. 6. 3.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서명자 명단 (2009년 6월 3일)
강우성 강진호 계승혁 고철환 구명철 구인회 권태억 김길중 김도균 김빛내리 김상종 김세균 김영민 김용익 김월회 김유용 김인걸 김장주 김재범 김종욱 김종일 김진수 김춘수 김현균 김혜란 김효명 남동신 류재명 모경환 문중양 민은경 박경숙 박동열 박명규 박배균 박태균 박현섭 박흥식 박희병 방민호 배은경 배철현 백도명 변현태 봉준수 성노현 손영주 송석윤 신광현 신종호 심봉섭 안광석 안삼환 양동휴 양현아 오명석 오석배 오순희 오용록 우희종 유용태 윤순진 윤여창 윤여탁 윤제용 이강재 이건수 이경우 이병민 이성중 이성헌 이애주 이인호 이일하 이창숙 이철범 이현숙 이형목 임호준 임홍배 장덕진 장승일 전종익 전태원 정근식 정용욱 정원규 정향진 조국 조영남 조현설 조형택 조흥식 최갑수 최권행 최무영 최영찬 최윤영 한상진 한숭희 한영혜 한인섭 한정숙 허원기 홍기선 홍성욱 홍승권 홍재성 홍진호 황상익

김명환(인문대) 김민수(미대) 김정욱(환경대학원) 김현진(인문대) 이건우(인문대) 이근(국제대학원) 이동수(환경대학원) 이상훈(사회대) 이용환(농생대) 이준호(자연대) 장진성(인문대) 전경수(사회대) 최병선(사회대) 최진영(사회대) 이상 124명

가나다 순 정리 (동명이인은 마지막에 나열하고 단과대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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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복기자 sibok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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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30일 통일민주당 해체식에서 "이의 있습니다" 라고 외치는 당시 노무현 의원
ⓒ 김종구

1990년 1월 30일 통일민주당 해체식에서 "반대토론 해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당시 노무현 의원

ⓒ 김종구

1990년 1월 30일 통일민주당 해체식장에서 당기를 흔드는 김영삼 당시 총재


ⓒ 김종구
2008년 사람과 사람이란 주제의 KBS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이 그동안 쌓아왔던 우리 민주주의를 통채로 버려버렸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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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차기 지명하라면 한명숙"
 승부사 노무현, 부드러움을 부러워하다
[오연호리포트: 인물연구 8] 승부사 노무현, '타협'을 강조한 까닭
09.05.28 12:51 ㅣ최종 업데이트 09.05.28 16:37 오연호 (oyh)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인 27일 오전 분향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 찾은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한명숙 전 총리의 손을 잡은 채 흐느끼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광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봉하마을, 끝없이 이어지는 시민들의 참배가 특별한 이의 등장으로 잠시 멈춰진다. 27일 저녁 8시경, 감옥에서 임시 출소한 '노무현의 오른팔'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전직 대통령의 영정 앞에 큰 절을 올린다. 그의 흐느낌은 계속되고 일어날 기색이 없다. '노무현의 왼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이 의원을 일으켜 세운다.

 

잠든 노무현의 위안, 한명숙 장례위원장

 

노무현이 남긴 남자들, '우'광재와 '좌'희정.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언급한 "나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은 너무 많은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두 386참모다. 영정만으로 남은 지도자 앞에서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두 40대 남자는 노무현 정부 인사들로 구성된 상주들을 향한다.

 

자신이 지도자로 모셨고,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었던 이의 자살 소식을 감옥 안에서 들어야했던 핵심참모는 얼마나 놀라고 슬펐을까? 이광재 의원은 상주대표로 나와 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껴안고 흐느낀다. 노 전 대통령 장례식의 공동장례위원장인 한 총리도 울음을 터트린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수십 명의 카메라기자가 터트리는 플래시 소리에도, 분향을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이 다 들을 정도로 컸다.

 

그곳으로부터 2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마을회관 빈소에 잠들어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장면을 하늘나라에서 봤다면? 만감이 교차하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한명숙 총리가 있어서 내가 걱정이 덜 된다'. 노무현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한 남자들을 가슴에 품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어머니 같은 부드러운 여성 한명숙이 있었기에 봉하를 찾은 상처받은 친노인사들은 다소간의 위안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봉하에 한명숙 전 총리가 없었다면? 공식적으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정부와 함께 공동으로 국민장을 치르기로 한 봉하의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영결식, 노제 준비 등에서 정부가 제대로 협조를 안 해준다는 것이다. 한 장례위원이 말했다. "그나마 한명숙 전 총리가 장례위원장이어서 그렇지 다른 사람이 맡았으면 진작 정부와 한판 붙었을 것이다."

 

한명숙(韓明淑, 1944년 평양 출생).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2006.3~2007.3)에 임명됐던 그는 이번 국민장의 공동장례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사실 생전의 대통령 노무현은 정치인 한명숙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대통령 노무현은 2007년 8월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내 마음 같으면 한명숙씨를 다음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왜 승부사 노무현은 한명숙을 부러워하고 후계자로까지 주목했을까?  

 

비보도 전제 "내 마음대로 차기 지명하라면 한명숙"

 

  
지난 25일 저녁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위원회 장례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총리가 장례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유성호
한명숙

인물연구 노무현을 위해 청와대에서 3일간 인터뷰를 한 것은 2007년 8, 9월이었다. 당시는 그해 말에 있을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예비후보들이 경선을 준비하거나 참여하고 있을 때였다. 민주당은 친노진영에서는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씨 등이 예비후보로 거론됐고, 비노진영에서는 정동영, 손학규씨가 나서고 있었다. 또 민주당 밖 진보개혁진영에서는 문국현씨가 대선참여를 선언한 상태였다.

 

나는 기자로서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가 이끄는 여권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던 선거판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기회가 왔다. 대통령과 우리 취재팀은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청와대 뒷산의 대통령 전용 데크에서 차 한잔을 하고 있었다. 민감한 이야기를 민감하지 않게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장소였다.

 

우선 이렇게 여쭤봤다.

 

-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 예비후보들을 보면 민주당 후보들이 다들 약합니다. 사전에 좀 더 치밀하게 후계자 준비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나요?

"후계자는, 그 이상은 내가 어쩔 수가 없어요.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한명숙씨 이야기 등을 하면서 "충분히 기회를 줬다"고 했다. 장관과 총리에 임명하면서 국민들에게 가능성을 어필할 시간을 줬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2002 대선 과정에서 스스로 여권후보를 '쟁취'했음을 상기시켰다.

 

"김대중 대통령 말기에 악재가 그렇게 많았어도 내가 대통령이 됐잖아요. 후보는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항상 하신 말씀이 '후계자는 자기가 하는 거지 내가 어떻게 짚어주냐?'였는데 그 말이 맞아요."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그의 지지도가 높지 않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대선은 현 정권에 대한 총체적 심판의 장이 아닌가? 현직 대통령 노무현은 그가 여당의 차기후보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내가 다음 선거까지 책임질 수 있는 지지도를 유지 못한 것은 맞지마는, 다음 선거까지 우세하도록 지지도를 유지 못한 거는 맞지마는..."

 

- 근데 이른바 친노진영의 후보감을 보면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씨 정도인데요, 민주당 경선에서 비노진영과 제대로 경쟁을 하려면 이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실 텐데....

"이거 나가는(보도되는) 거 아니오?"

 

대통령은 오프더레코드를 요구했다. 당시에 노 대통령이 친노 예비후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는 너무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프더레코드를 받아들였지만, 그것의 유효기간을 정하진 않았다. 나는 혼자서 퇴임 후 적절한 시점까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가는 거 아니면 내가 말해 주지."

너무 뜻밖이어서 우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누가 되는지 모르지만, 나보고 마음대로 지명하라고 그러면 한명숙씨요."

 

- 아, 그래요? 

"예."

 

대통령은 "그러나"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왜 지금 한명숙이다, 이런 소리를 내가 안 하냐 하면, 이 선거 국면에서 민심을 움직이는 것은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내가 억지로 뭘 하려고 하다 오히려 판을 깨는 수가 있지요. (친노후보들) 그 사이에서는 별 차이 없으니까 (나는 그냥) 보고 있는 거죠."

 

"내가 부드러움이 부족하거든, 그것에서 신뢰가 나오는데"

 

  
노무현 대통령과 인터뷰 중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 청와대 제공
노무현 대통령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왜 한명숙씨를 차기 후계자로 마음에 두고 있었을까? 그 이유가 참으로 뜻밖이었다.

 

"앞으로의 우리 정치는요, 이것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상대하고도 대화를 하는 쪽으로 가야 됩니다. 사회적 갈등 과정에서도 사람들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근데 그 점에서 한명숙씨가 굉장히 탁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 소신에 관해서는 강단이 있지만 사람이, 느낌이 부드러워요."

 

노대통령은 부드러움이 신뢰와 연결된다고 했다. 

"부드러우면 상대방한테 신뢰를 줘요. 이 사람하고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다 진심인 줄 알고 진지하게 대화를 해요. 나까지 나서 대화를 해도 도저히 안 풀리는 어떤 사안이 있어서 한명숙 총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이제 그만두십시오. 그거 되지도 않을 타협을 뭘 자꾸 하려고 그럽니까?' 그러면 한 총리가 '아, 그래도 조금 며칠만 나한테 맡겨놓아 주세요' 합니다. 그러면 내가 그 사안을 잊어먹고 있으면 보름 되고 한 달 되고 하는데, 어찌어찌 해 가지고 그 문제를 풀어서 가지고 와요."

 

의외였다, 승부사적 기질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오른 노무현은 "미래의 지도자는 좀 부드러웠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앞으로 우리 정치 풍토나 분위기 같은 것으로 봤을 때 좀 부드러운 지도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정치인 노무현은 자신이 부족한 것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 점이 부족한 것이) 나는 항상 내 약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만 보면 이상하게 이 사람들(정적)이 저 사람이 나를 뭔가 해코지할 거라는 불신 아닌 불신감을 갖고 있거든. '또 저게 무슨 꼼수를 내나?' 저 사람들은 내가 꼼수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 나는. 꼼수를 안 부리는데도."

 

그는 자신이 정적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원인을 '직선으로 가는 노무현'에서 찾았다.

"내가 하도 직선으로 가니까. (상대편에선) 그럴 리가 없다 싶어서 (그렇게 대응하면) 자꾸만 당하고, 당하고 하니까."

 

그렇게 얻은 승리는 길게 보아 꼭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근데 그게 좋은 건 아니죠. 항상 자기를 코너로 몰아버리는 적수를 좋아하겠습니까? 자기들이 공격하면 한번 얻어맞기도 하고, 좀 살려 달라고 오기도 하고 해야 되는데, 한 번도 내가 지들한테 살려달라 소리 안 했거든."

 

청와대 뒷산의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그만 내려갑시다"라며 일어섰다.

 

승부사 노무현은 왜 타협을 강조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노트북을 펴놓은 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진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까지 싸움을 벌인 대통령 노무현은 그렇게 "다음은 부드러운 정치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정치노선도 사실 알고 보면 '부드러운' 것이었다. 

 

보수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좌파'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노 대통령의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는 관저에서 인터뷰할 때 참여정부의 기본 노선을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 정부가 성공을 했든 안 했든 간에, 기본적으로 우리 참여정부가 하려고 했던 것은 시장권력과 언론권력을 제어함으로써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신장하려고 한 것입니다. 시장에서 최소한의 기본선 아래로 낙오하는 사람들을 함께 끌어안고 가는 것이 우리 정부의 역할이라고 분명히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가 하면 진보진영에서는 노 대통령이 해나가는 것을 보고 성에 차지 않아했다. 노 대통령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진보진영에서는 '왜 빨리 하지 않냐, 확 엎어버려야지' 이런 식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시장의 저항이 일어나죠. 시장의 원리 자체에서 시장이 위축되거나 시장에 심각한 저항이 일어나면 전체적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파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속도 싸움'이 중요합니다."

 

노 대통령은 일부 진보학자를 거론하면서 "투쟁사관만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역사라는 것이 투쟁으로 발달한다는 투쟁사관만 가지고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지요. 오늘날 어느 정도 앞서 가고 있는 나라는 투쟁의 역사만으로 성공한 게 아니지요. 투쟁과 절제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투쟁에다 그 사회 지배세력의 관용과 절제가 적절하게 배합되어야 합니다. 두 개는 같이 가야죠. 투쟁 없는 역사도 없지만, 그러나 관용과 배려가 없는 역사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노 대통령은 "그래서 투쟁과 타협은 적절하게 배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링컨이 성공한 대통령이 된 것은... 죽어버렸거든"

 

그러나 그게 어찌 쉬운 일인가?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보수와 적절히 타협해 일을 제대로 실현해나간다는 것은. 그것이 제대로 이뤄질 때 국민통합은 가능할 것이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대통령은 성공하는 국가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 노무현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던, 그래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은 링컨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01년 11월 펴낸 <노무현이 만난 링컨>(학고재)에서 그는 링컨을 "낮은 사람이,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든 전형을 창출한" 대통령으로 적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링컨의 성공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링컨이 성공한 대통령이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요. 첫째는 국가적 통합을 이뤄냈지요. 전쟁까지 감수하는 단호함을 보이면서도 결국 국가적 통합을 이루어냈습니다. 두 번째는 노예해방을 이뤄내 그것이 이후에 보편적인 가치로 계속 자리 잡게 되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요. 세 번째로는, 그분의 인간성이 정직하고 소박해서 그것이 지금까지 칭송되고 있는 거지요."

 

노 대통령은 덧붙였다.

"그 다음에 또 하나 성공 요인은....."

 

대통령 노무현이 링컨의 성공요인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솔직히 말해 당시 인터뷰에서는 반쯤은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1년 펴낸 '노무현이 만난 링컨'
ⓒ 이정환
노무현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죽어버렸다는 거죠."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를 비롯한 <오마이뉴스> 취재팀과 배석한 비서들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죽어 버렸거든. 골치 아픈 거 해결해야 될 때는 죽어버렸거든. 전쟁으로 한쪽을 패배시키는 것은 쉽지만, 패배한 상대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거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을 때 죽어버렸거든."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승리(1865년 4월 9일)한지 닷새만에 포드극장에서 남부 출신 배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링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암살당한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자살한 대통령이다.

 

27일 저녁, 두 번째로 찾은 봉하마을.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에 술 한잔을 올리면서 그날 그 인터뷰를 떠올렸다. 링컨의 죽음을 말씀하며 환하게 웃던, 그래서 우리의 웃음까지 자아내게 했던 대통령을 생각했다.

 

봉하마을 만장 "또 하나의 바보 노무현을 만날 때까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지도자도 죽는다.

 

링컨은 패배한 상대를 끌어안는 일을 하다 타살돼 역사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불리고 있다. 노무현은 패배한 상대를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승자의 검찰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밤 9시, 나는 봉하마을을 떠나고 있는데 조문객들은 여전히 몰려들고 있었다. 분향소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2차로를 꽉메운 사람들, 두세 시간 기다려도, 밤을 새워도 좋다고 온 사람들. 그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인도한 그 힘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그들이 분향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는 봉하마을로 가는 길 양쪽에는 5백여 개의 만장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부산의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밤샘해서 만들어왔다는 그 만장 중에는 이렇게 적힌 것도 있었다.

 

'또 하나의 바보 노무현을 만날 때까지'    


청와대 홈피 내 자유게시판에 글을 쓸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명은 물론 자기의 신상공개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필터링이 엄하다 못해 가혹하기로 유명하구요.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도를 넘은 비난글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구속되거나 불이익을 당해도 상관 없다는 그런 투입니다. 민심이 그만큼 사나워지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요?

청와대를 찾아 작심하고 독설을 퍼붓는 국민들의 분노에 찬 음성을 몇 개 들어 보시죠.(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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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캡쳐

"시골 내려가서 조용히 살고 있는 전 대통령을 꼭 그리 해야만 했나요..교회 열심히 다니신다며요.. 하나님은 몇백번을 용서하라..사랑하라고 했네요. 전 가끔 당신이 헤깔립니다. 우리의 국민 대통령이신 노 전 대통령...이제 다시 볼수 없어요..당신들 때문에.. 지금 현 정부만 너무도 끔찍하고 소름끼치게 싫습니다... 전 당신이 죽으면 박수치고 싶네요.."(진**)
 
"대통령 자격이 없소. 당신을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탄핵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였소,,겉으론 애통하다 슬프다 해놓고 속으론 웃고있는 당신은 진정 사람맞소....시민들이 분양소 설치한 건 왜 못하게 하는지 뭐가 그리 두려워서 진정한 대통령을 죽였습니까. 죄를 짓고도 잘 살거라 생각합니까?? 전두환 노태우도 잘사는거 보니 당신도 쓰레기요..쓰레기는 아무 곳에서도
뻔뻔하게 자기 자리 지키는 법이라서.....당신을 정말 증오하오."(최**)

"이명박씨 마누라 사촌언니 공천장사질에 대해 검찰은 포괄적 뇌물죄를 검토해라. 이명박씨 딸 남편의 주가조작혐의에 대해 확실히 수사해라.(무혐의? 장난치나?)반값등록금, 747등의 허위공약에 대해 책임을 물어라! 이명박씨 아들 낙하산 의혹에 대해 밝혀라!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에 가지 말아라. 당신 같은 인간이 함부로 발 들일 곳이 아니다. 가고 싶다면 혼자 가라! 어떤 꼴 나나 보자.."(이**)

"국민 모두가 울었던 5월 23일.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을 슬픔을 헛되이 하지않을것입니다. 누가 죽음으로 몰았는지.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김**)

"포괄적 뇌물이라는 형법전에도 없고 학설에도 없는 전대미문의 죄를 자의대로 창조하는 이명박씨와 그 일당들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포괄적 살인이라는 죄를 국민의 이름으로 창조하는게 근거 없는게 아니죠. 오히려 국민다수의 의견으로 여론이 모아진다면 죄형법정주의보다 더 강력한 근거인 주권자로서의 법의 창설이 되겠군요. 근데 이명박씨와 그 일당들은 어떻게던 국민의 여론을 차단하고 또 물타기해서 빠져 나가려 하겠죠. 그런데 이를 어쩌나요. 국민들 대다수가 여러번 겪으면서 이제는 그 간사한 술수를 파악해 버렸담니다. 죄질이 불량하고 고도의 계획성이 있는 타살에 대한 벌은 사형이죠. 전과14개도 모잘라서 이제는 살인까지 저지르시다니. 아듀 이명박씨."(김**)
 
"제발 없어져 주시면 안돼요? 부탁드릴게요. 사라져 주세요. 아예 이 세상에서."(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2009년5월23일 이 날은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인과응보라는 말을 아시는지요?? 3년 후가 기다려 집니다. 피를 끓이면서 이를 악물고 기다리겠습니다. 정치 관심이 없습니다 먹고살기 바빠서..이젠 관심을 가지고 보겠습니다. 얼마나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림을 꾸려나가는지... 국민들 많이 힘들어 합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답답합니다..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핑돌아 모니터 글씨가 흐려 보입니다. 국민들이 평가합니다. 두고 보십시요.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셔야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김**)

"당신은 대통령 자격이 없소. 용역들 불러 거주민 내몰고 건물이나 짓는 건축업자 딱 그 수준밖에 안되는것 같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고 나라는 더 가난해졌고, 자살자는 더 늘어났으며, 전과14범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에 국가 위신도 땅에 떨어졌고, 반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에 사회분열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조금의 양심이나마 있다면 지금 자리에서 내려오쇼. 당신의 거짓말을 듣는 하루하루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상당히 고통스럽소. 캬악~ 퉤!"(김**)

"아 그냥 죽어라. 그냥 미국가서 살던가, 자살하던가, 둘 중에 하나 해라. 진짜 꼴보기 싫은 세끼야이. 명박아."(서**)

"돌아가시고 난 후 정중히 모셔라? 생전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이제 후회되냐? 밥은 넘어가냐?"(권**)

"당신의 심장엔 뭐가 들어 있습니까? 겉과 속이 너무나 다르게 보이는 당신에게 살아가는 동안, 아니 죽어서도 영원히 저주를 내리길 기도하겠습니다."(최**)

"잊지 않겠다. 전직 대통령을 표적수사해서 몰아부쳐 자살하게 만들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 이명박 대통령, 이번 잊지 않고 당신 앞으로 어떻게 살지 똑똑히 지켜보겠다."(유**)

"인간의 추악함의 끝을 보여주는군요. 당신은 언젠가 당신의 죄값을 꼭 치를 겁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저버리고 당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당신은 그저 늙은 괴물일 뿐입니다."(송**)

"조용히 가슴에 묻어 두리라. 절대 잊지 않고 되새기며 기억하리다. 지금 거기 있는 너희들을.., 죽은 권력에 강한 너희들.. 힘없는 자를 그렇게 궁지로 몰아야 했었냐? 너희도 죽은 권력으로 물러났을 때 누군가 너희를 궁지로 분명히 몰아넣을 것이다. 그때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조용히 ending 해라. 그때는 방구석에서 나혼자 기쁨의 술 한잔을 들이키리라."(계**)

"오늘 결심했습니다.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뒤로 물러나 방관만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제 모습을 다시 찾아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이 내게 주신 삶에 대한 희망과 가치,, 지금은 어둠 속에서 위태위태 하지만 꼭 지켜나겠습니다."(이**)

     

- 虛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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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비록 짧은 장관 재임이었지만 이러한 나의 경험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자 재임시절부터 틈틈이 생각과 활동을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작년 3월 말 퇴임하자마자 그냥 버리기 아까운 기억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기 위해 새롭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글의 초안은 작년 6월 말에 완성되었다. 이것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서는 더 손을 대야 했지만 이후의 정치활동이 너무 바빠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이끌고 행정부를 통할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마당에 국민들에게 장관으로서의 나의 활동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다. 국민들이 정치인을 제대로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도 정치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나의 국가경영 리더십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의 리더십을 국민들에게 설명할 필요성도 강하게 느꼈다. 이런 생각으로 나의 홈페이지에 올려 두었던 원고를 좀더 다듬어 이번에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출판으로 국가경영을 책임과 권리, 정보와 지식의 공유 및 확대 과정으로 보고자 한 나의 생각이 독자 여러분과 공유되기를 희망한다.
- p 6. 서문/ "리더십을 다시 생각한다", 중에서

권위적 리더십은 '인간을 게으르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보고 권력은 직위에서 나오는 강제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적 리더십은 '인간은 자기 규제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자발적인 추종을 중시한다. 나는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할 때나,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할 때나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을 한결같이 동지로 보았고 그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 왔다. 이때까지 내가 몸담았던 어떤 조직보다도 큰 조직인 해양수산부의 수장이 되어서도 나의 이러한 인간관, 조직관은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조직을 올바르고 강하게 이끌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애정과 열정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고통과 기쁨, 절망과 희망까지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 리더십에 대한 나의 기본생각이다.
- p 13-14. 제1장 리더십의 원리, 중에서

직원들과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 중의 하나는 "현장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가면 다 있다. 문제점도 거기에 있고, 해결책도 거기에 있다. 만나야 할 사람도, 알아야 할 사실도 그곳에 가면 다 있다. 현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정책의 시작은 현장을 확인하는 데 있다." 나는 이 말에 덧붙여 선례를 많이 익히고 분석해 보라는 충고도 직원들에게 자주 했다. 현실적 상황을 파악한 다음에는 구체적인 대책들을 하나 둘씩 마련해야 하는데 이럴 때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 p 50. 제2장 리더십과 문제해결, 중에서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력은 무엇일까.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장관의 스타일을 꼽는 분도 있고,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하고 챙기는 담당 공무원의 능력을 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정책에 대한 담당 공무원의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일은 반드시 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 확신하는 담당자의 자세야말로 엄청난 적극성과 추진력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무원은 명령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확신으로 움직인다. 움직이게 하는 힘은 확신이다. 자신감이다'라고 끊임없이 되새겼다.
- p 90. 제3장 리더십과 조직관리, 중에서

이렇게 해서 해양수산부의 '지식항해운동'은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지식경영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에다 학습프로그램을 가미하고, 부처의 특성을 고려하여 명명한 '지식항해운동'은 크게 정보의 '창출'과 '공유'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정보의 창출을 위해서 '지식보트'(Knowledge Boat)라고 불리는 학습조직을 출범시키고, '지식포럼'을 개최하였다. 지식보트는 관심사가 비슷한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공부와 토론을 하는 학습조직으로서 매달 한 번씩 발표회를 개최하는데, 2001년 봄에는 24개가 운영되었다. 한편 지식포럼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사, 창의적 사고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는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토론을 벌이는 프로그램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개최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직원 각자의 학습의욕과 정책개발을 고취하기 위하여 '정책토론방'도 개설하였다. 이 방을 통해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와 관련한 지식이나 정책방향에 대한 소고들을 소개하거나 행정개선사항과 비용절감방안 등을 제안한다. 이러한 활동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해양수산부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도입하였다.
- p 156-157. 제4장 리더십과 인사관리, 중에서

나는 이 문제(수협문제)를 풀기 위해 재경부 장관에서부터 담당 사무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득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기도 했고 e-mail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리고 수협문제와 관련된 부내 토론도 수십 차례 전개했다. 이러한 부내, 부외와의 토론을 통해 쟁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결국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선입견 없이, 형식과 격식을 떠나 마음을 열어놓고 전심으로 노력한 것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결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수협문제와 관련된 일을 일단락하면서 나는 힘센 장관이란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 성의를 갖고 일반국민에서 이해당사자까지, 사무관에서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관계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리더의 힘은 설득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 p 240. 제7장 리더십의 핵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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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비우고 편하게 가시라




25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해병대 윤영광 중위가 전역신고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추모행사가 시위로 변질될 것을 우려해 분향소 주변을 에워싼 경찰의 과잉대응이 시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24일 오후가 되면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노 전 대통령 추모 거리분향소에 사림들이 몰리고 있다.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은 덕수궁 대한문에서 광화문 방면으로 이어지다가 지하철 1, 2호선이 만나는 시청역 3번 출구 지하로까지 연결됐다.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은 덕수궁 대한문에서 광화문 방면으로 이어지다가 지하철 1, 2호선이 만나는 시청역 3번 출구 지하로까지 연결됐다. 즉, 수백 명의 시민들은 현재 지상이 아닌 땅속에서 자신들의 분향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24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임시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광주노사모' 회원들이 5.18항쟁 사적지인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에 분향소를 설치하기 앞서 정문에 조기를 내걸고 있다. /맹대환기자 mdhnews@newsis.com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각계의 추모 물결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시청 앞 덕수궁 대한문에서 진행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향식'에서 시민들이 고인의 영전에 올린 담배가 연기를 내뿜고 있다.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가운데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조문객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측에서 보낸 화환을 부수고 불을 지르고 있다. /특별취재팀


















[노컷뉴스 오대일 기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각계의 추모 물결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시청 앞 대한문에서 진행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향식'에서 경찰이 주최측의 분향소 설치를 가로막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 조사(弔辭) 전문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대통령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떠안은 시대의 고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벽빛 선연한 그 외로운 길 홀로 가셨습니까?

유난히 푸르던 오월의 그날, '원칙과 상식' '개혁과 통합'의 한길을 달려온 님이 가시던 날, 우리들의 갈망도 갈 곳을 잃었습니다.서러운 통곡과 목 메인 절규만이 남았습니다.

어린 시절 대통령님은 봉화산에서 꿈을 키우셨습니다. 떨쳐내지 않으면 숨이 막힐 듯한 가난을 딛고 남다른 집념과 총명한 지혜로 불가능할 것 같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님은 꿈을 이루기 위해 좌절과 시련을 온몸으로 사랑했습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힘차게 세상에 도전했고, 꿈을 이룰 때마다 더욱 큰 겸손으로 세상을 만났습니다. 한없이 여린 마음씨와 차돌 같은 양심이 혹독한 강압의 시대에 인권변호사로 이끌었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향한 열정은 6월의 민주투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삶을 살아온 님에게 '청문회 스타'라는 명예는 어쩌면 시대의 운명이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3당 합당을 홀로 반대했던 이 한마디! 거기에 '원칙과 상식'의 정치가 있었고 '개혁과 통합'의 정치는 시작되었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지킨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거듭된 낙선으로 풍찬노숙의 야인 신세였지만 님은 한 순간도 편한 길, 쉬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노사모' 그리고 '희망돼지저금통'. 그것은 분명 '바보 노무현'이 만들어낸 정치혁명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은 언제나 시대를 한 발이 아닌 두세 발을 앞서 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영악할 뿐

 

이었습니다.

수많은 왜곡과 음해들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렵다고 돌아가지 않았고 급하다고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항상 멀리 보며 묵묵하게 역사의 길을 가셨습니다.

반칙과 특권에 젖은 이 땅의 권력문화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화해와 통합의 미래를 위해 국가공권력으로 희생된 국민들의 한을 풀고 역사 앞에 사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님이 대통령으로 계시는 동안, 대한민국에선 분명 국민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동반성장,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으로 더불어 잘사는 따뜻한 사회라는 큰 꿈의 씨앗들을 뿌려놓았습니다.

흔들림 없는 경제정책으로 주가 2천, 외환보유고 2,500억 달러, 무역 6천억 달러,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군사 분계선을 걸어 넘어 한반도 평화를 한 차원 높였고, 균형외교로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 냈습니다.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세계 첫 대통령으로 이 나라를 인터넷 강국, 지식정보화시대의 세계 속 리더국가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이 땅에 창의와 표현, 상상력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고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한류가 넘치는 문화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통령님이 떠난 지금에 와서야 님이 재임했던 5년을 돌아보는 것이 왜 이리도 새삼 행복한 것일까요.

열다섯 달 전, 청와대를 떠난 님은 작지만 새로운 꿈을 꾸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잘사는 농촌사회를 만드는 한 사람의 농민,'진보의 미래'를 개척하는 깨어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는 소중한 소망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봉하마을을 찾는 아이들의 초롱한 눈을 보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뇌하고 또 고뇌했습니다.

그러나 모진 세월과 험한 시절은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룰 기회마저 허용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한없이 엄격하고 강인했지만 주변의 아픔에 대해선 속절없이 약했던 님.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글을 접하고서도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그래도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의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꿈 만큼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입니까? 세상이 이런일이 있습니까?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조차도 빼앗고 말았습니다.

님은 남기신 마지막 글에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최근 써놓으신 글에서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실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남아 있는 저희들을 더욱 슬프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대통령님.
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님의 말씀처럼 실패라 하더라도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습니다. 그래서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님. 생전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분열로 반목하고 있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끄시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간의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주십시오. 그리고 쓰러져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꽃피우게 해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냅니다.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 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을 놓아드리는 것으로 저희들의 속죄를 대신하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가시는 길,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잊으시고, 저 높은 하늘로 훨훨 날아가십시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
2009년 5월 29일







노제가 치러지는 동안,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 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특히 아들 건호 씨는 하늘만 쳐다보며 흐르는 눈물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았다. 형 건평 씨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동지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노제 내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들이 앉아서 보이는 하늘 한 편에서, 노 전 대통령이 하늘로 편히 올라가라는 듯 조그마한 무지개가 뜨기도 했다. 이에 문 전 실장이 권 여사에게 보라고 손짓했고, 권 여사는 무지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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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대통령 유서 내용

머니투데이 | 양산 | 입력 2009.05.23 14:11 | 수정 2009.05.23 15:41

 

[머니투데이 양산=윤일선기자]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전 사용하던 사저의 컴퓨터에 유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유서의 마지막 저장 시간은 23일 새벽 5시 21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유서 내용과 유족측(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배포한 자료 사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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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 2008/07/17 22:06 posted by 유시민

無惻隱之心非人也   無羞惡之心非人也   無辭讓之心非人也   無是非之心非人也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겸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惻隱之心仁之端也   羞惡之心義之端也   辭讓之心禮之端也   是非之心智之端也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어짐의 시작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의로움의 시작이다. 겸양하는 마음이 예의 시작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지혜로움의 시작이다.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孟子의 말씀이다. 소위 4단론(四端論)이다. 24년 전 처음 맹자를 읽었을 때, 어째서 측은지심을 맨 앞에 두었는지 의아했다. 좋은 군주가 되는 길을 제시하는 말씀에서 가련한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제일 먼저 말하다니! 과연 왕에게 그것이 제일 중요할까?


이 밤에 맹자를 다시 읽으며 내 좁았던 思惟의 폭을 자책한다. 어진 마음이 없는 자가 어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자가 어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알고 문학과 예술을 논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마음이 없는 자가 무엇을 준거로 삼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역사에서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지도자가 이 네 가지 가운데 하나도 온전히 지니지 못했다면, 그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오늘 밤도 광장의 촛불은 잠들지 못하고, 아파트 숲 속에 유배당한 나도 잠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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